7년 전쟁은 어떻게 동아시아의 300년 역사를 바꿔놓았나?
‘임진년에 일어난 왜인의 난동’에서 ‘동아시아 최초의 삼국 대전’으로
새로운 관점으로 써 내려간 “임진왜란 삼국지”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4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임진왜란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이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일본의 악랄한 침략자가 조선을 공격했고 조선의 임금은 피란하기에 급급했지만 이순신이라는 명장이 거북선을 앞세워 나라를 지켜냈다.” 임진왜란은 말 그대로 ‘임진년(1592)에 일어난 왜인의 난동’에 불과할까? 단순히 조선과 일본만의 전쟁이었을까?
KBS 팩추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를 단행본으로 재구성한 이 책은 임진왜란을 ‘동아시아 삼국의 국제전’으로 조명하며 우리가 간과했던 전쟁의 이면들을 펼쳐 보인다. 임진왜란은 일본의 무력 도발로 갑자기 일어난 전쟁이 아니었다. 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한 명나라, 명나라의 1등 조공국으로 입지를 다져온 조선, 명나라 중심의 질서에서 소외된 일본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전쟁의 불씨는 200년에 걸쳐 피어올랐다. 세 나라의 정규군이 처음 맞붙었다는 점에서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최초의 국제전이었고, 16세기 동아시아 질서를 재편하기에 이르렀다. 전쟁 이후 조선에서는 반정으로 왕이 바뀌고, 일본에서는 에도 막부가 들어섰으며, 명나라는 멸망하고 청나라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임진왜란에 관한 여느 책들과 다르게, 『임진왜란 1592』가 일본과 명나라의 인물들을 비중 있게 다룬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천한 바늘 장수에서 일본 최고의 권력자로 거듭난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랜 라이벌이자 일본군의 두 선봉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 조선에서는 나라를 구한 황제로 추앙된 반면 명나라에서는 나라를 망하게 한 암군(暗君)으로 손가락질 받은 만력제, 적장에게 뇌물을 받지만 결국 이순신과 함께 노량 해전을 이끈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에 이르기까지. 이제껏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의 무대에서 조연처럼 취급되어온 이들의 숨은 비화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16세기 동아시아 질서를 뒤흔든 초유의 사건, 임진왜란. 이 책은 치열하고도 뜨거웠던 동아시아 삼국의 격전을 생생하게 그려낸 이른바 “임진왜란 삼국지”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 임진왜란을 ‘동아시아 삼국의 국제전’으로 접근하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
· 하나의 전쟁, 세 가지 이름
1592년에 일어난 이 전쟁을 오늘날 한국에서는 임진왜란(壬辰倭亂; 임진년에 왜인이 일으킨 난동), 일본에서는 분로쿠-게이초의 역(文祿慶長の役; 분로쿠 및 게이초 시대에 이뤄진 정벌), 중국에서는 만력조선전쟁(萬曆朝鮮戰爭; 만력제 재위 중 조선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일컫는다. 전쟁을 향한 세 나라의 서로 다른 시선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황금 부채(본문 73쪽)
명나라와 조선, 일본 세 나라의 지도가 담긴 이 부채에는 일본 열도가 한반도의 두 배 이상, 그리고 중국 대륙에 버금갈 정도로 크게 그려져 있다. 조선을 거쳐 명나라를 정벌하고 인도에까지 진출하려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심을 엿볼 수 있다.
· 평양성 전투, 삼국의 정규군이 처음 정면충돌한 순간(본문 191쪽)
1593년 1월, 평양성을 둘러싸고 조?명 연합군과 일본군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이 전투는 조선, 일본, 명나라의 정규군이 맞붙은 동아시아 최초의 국제전이자 최대 규모의 근대적 화약 전쟁이었다.
· 조선은 빼고 명나라와 일본만 참여한 강화 회담(본문 209~211쪽, 234~235쪽)
1593년에 시작된 강화 회담은 약 4년에 걸쳐 지속되었다. 회담의 주체는 명나라와 일본. 일본이 내건 협상 조건 7개 중 4개가 조선에 관한 것이었음에도 조선은 강화 회담에 참석하지 못했다.
“수신료의 가치를 느끼게 해준 역대급 명작” -시청 후기 중
방영 즉시 수많은 찬사가 이어진 화제의 프로그램
국내 최초 팩추얼 드라마 KBS [임진왜란 1592]를 책으로 만나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1000만 이상의 관객이 열광한 영화 [명량]의 명대사이다. 불가능에 가까운 싸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의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자긍심에 도취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영화니까 가능한 얘기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의 실제 역사를 살펴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극적인 사건들이 줄지어 일어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에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한다. 조선 수군의 최종 병기였던 거북선(龜船)은 전쟁 발발 하루 전에 완성된다. (영화와 수치상 차이가 있지만) 명량 해전에서 이순신과 조선 수군은 단 13척의 판옥선으로 133척의 전함을 보유한 일본군을 물리친다.
“때로는 역사적 사실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이 책의 원작인 KBS 5부작 팩추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는 이 점에 착안했다. 전문가 자문을 거치며 대본을 228회나 수정했을 만큼, 철저한 역사적 고증에 입각해 임진왜란을 사실적이면서도 극적으로 연출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수신료의 가치를 느끼게 해준 역대급 명작” “참다 참다 마지막에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프로그램이 5부작인 게 아쉬울 따름이다” 등 방영 이후 시청자들의 뜨거운 찬사가 잇따랐고, 2017년에는 제44회 한국방송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뒤이어 휴스턴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과 뉴욕 TV&필름 페스티벌 작품상 금상 및 촬영상까지 수상하며 세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이 책은 방송 [임진왜란 1592]를 바탕으로 한 역사 교양서이다. 원작이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화려한 영상미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책은 여기에 시대적 맥락을 더하고 21가지 핵심 사건을 중심으로 임진왜란의 역사를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16세기 동아시아 정세에서부터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의 비장한 사투, 조선과 일본, 명나라가 정면충돌을 일으킨 평양성 전투, 거짓으로 점철된 강화 회담, 전쟁의 재개와 종결에 이르기까지 임진왜란의 굵직한 흐름을 차근차근 짚어낸다.
조선 수군의 최종 병기 거북선은 실전에 언제 투입되었을까?
한산도 대첩에서 완패한 일본 장수의 비참한 말로…
진주 대첩의 영웅이 가부키극의 괴수로 등장한 사연…
명장면 70여 컷 수록, 전쟁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주는 [포토 인트로]
한 편의 드라마처럼 즐기는 임진왜란의 역사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의 시작과 끝을 다룬 만큼 『임진왜란 1592』의 묘미는 단연 긴박하고 치열한 전투 이야기에 있다. 이 책은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꼽히는 한산도 대첩, 진주 대첩, 행주 대첩을 비롯해 조선 선조가 피란을 결심하게 만든 탄금대 전투, 이순신 함대가 첫 승을 거둔 옥포 해전, 거북선이 처음 실전에 투입된 사천 해전, 기세등등했던 명나라군이 전투 의지를 잃게 된 벽제관 전투 등을 다룬다. 특히 일본군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한산도에서 이순신 함대에게 패한 뒤 무인도에서 미역을 뜯어 먹으며 연명했으며(본문 137쪽), 진주 대첩에서 패한 일본군들이 진주 목사 김시민을 ‘모쿠소(木?)’라고 부르며 두려워했던 것을 계기로 훗날 가부키극에 동명의 등장인물이 생겨났다는(본문 176쪽) 일화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해상과 육상에서 승전을 거둔 조선군의 위용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원작인 방송 [임진왜란 1592]에서 시간 관계상 미처 보여주지 못한 심층 주제들도 한데 모았다. 쓰시마섬 도주의 사기극이 빚어낸 111년 만의 통신사 파견(본문 41~43쪽), 전국시대 일본의 세 영웅과 임진왜란의 연결 고리(본문 75~81쪽),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과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의 기묘한 우정(본문 269~277쪽), 종전 11년 만에 조선이 다시 일본과 국교를 맺은 사연(본문 295~299쪽) 등이 별면 코너 [행간의 역사]에서 소개된다.
전쟁사 책이라고 해서 딱딱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은 버려달라. 책 곳곳에 방송 [임진왜란 1592]의 명장면 70여 컷이 수록되어 있어 원작의 화려한 비주얼과 진한 여운을 음미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각 부의 도입에 배치된 [연표]와 [포토 인트로]는 길고도 짧은 임진왜란의 역사에서 독자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